NUMBER 3. 아이비엠
상태바
NUMBER 3. 아이비엠
  • Network Computing
  • 승인 2001.01.15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0년간 가장 영향력 있었던 기업 Top 10
아이비엠은 가파른 나선형 곡선 속에서 90년대를 시작했다. 이 회사의 거만함(나머지 시장에 발맞춰 새로운 기술을 제공하는 데는 실패한 채)에 진력이 난 사용자들은 아이비엠에서 금방 머리를 돌려 쌍수를 들며 환영하는 경쟁업체들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90년대가 끝날 때 즈음, 아이비엠은 그 하강을 멈췄을 뿐만 아니라 많은 부문에서 예전의 명성을 다시 회복하고 이전 고객의 상당수를 다시 찾았다. 이렇게 한 아이비엠의 방침은 간단했다. 즉 가치, 기술 혁신 그리고 고객 서비스의 성공적인 결합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고객 중심 마인드가 ‘상승 곡선’
1980년대에 아이비엠은 PC에서 중대한 실수를 하는 바람에 컴팩, 델 및 기타 업체들이 데스크탑의 금자탑을 쌓도록 허용하고 말았다. 이 회사는 대부분의 세상이 이더넷을 선호하는데도 불구하고 토큰 링 기술을 밀고 나갔다.

아이비엠은 라우팅 시장을 놓쳤으며, 클라이언트/서버 컴퓨팅 환경을 제공하는 데도 늦었다. 이 회사의 메인프레임은 여전히 판매되고 있었지만, 그 판매량은 거대한 아이비엠의 기업 인프라를 유지하는 데 충분치가 못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아이비엠은 스스로 속을 비워내기 시작했다. 아이비엠 제품을 사랑하던 충성스런 고객들은 어떠한 로컬 판매나 지원 대리점이 없다는 사실을, 혹은 그러한 고객들이 현재 소유하고 있는 제품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들은 경쟁업체의 제품을 살수밖에 없었으며, 따라서 아이비엠의 하강 곡선은 스스로를 갉아먹고 들어갔다.

1993년 4월 1일, 루이스 거스너(Louis V. Gerstner Jr.)는 존 에이커즈(John F. Akers)의 뒤를 이어 아이비엠의 회장 겸 CEO를 맡았다. 이 해 아이비엠은 80억 달러 손실을 기록했으며, 이것은 아이비엠 사상 최악이었다. 하지만 아이비엠 최초로 회사 외부에서 영입해온 CEO인 거스너는 그가 일정 기간 근무하던 RJR 나비스코(RJR Nabisco)와 특히 아메리칸 익스프레스(American Express Co.)에서 고객 중심의 마인드를 가져왔다.

회사를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는 데스크탑에서의 패배를 인정하고 OS/2를 버렸다. 그는 또한 아이비엠의 가장 큰 강점들 중 하나에 새로운 역점을 두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바로 고객에게 완벽한 솔루션과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일단 이 회사가 표준 상태에 올라서자, 거스너는 199년 로터스와 1996년 티볼리 시스템즈의 인수를 주도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