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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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 승인 2006.0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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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요즈음 가슴 속 깊이 되새기고 있는 속담이다. 21세기 지식시대를 살아가며 사람이 지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겸손할 줄 알아야 한다는 옛 속담을 되새기게 되는 건 이 속담이 최근 기업들의 지속적인 생존 및 발전 전략을 위한 새로운 리더십 패러다임 중 하나로 주목을 받고 있는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의 핵심 철학을 잘 설명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서번트 리더십은 최근 각광을 받기 시작했지만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AT&T에서 경영관련 교육과 연구를 담당하던 로버트 그린리프가 저술한 ‘서번트 리더십’이란 책을 통해 1997년 처음 제시됐다. 하지만, 출간 후에도 20년 동안 경영학자들의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하다가 지난 1996년 미국의 한 경영 관련 서적 전문 출판사가 출간한 ‘서번트 리더 되기’라는 책을 계기로 비로소 많은 학자들의 주목을 받게 됐다. 그 이후로 서번트 리더십을 주제로 다루는 경영서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으며, 3M과 인텔 등 세계 굴지의 기업들이 서번트 리더십 워크숍을 직원 교육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적극 수용하고 있다.

지식시대 새로운 리더십 필요
‘타인을 위한 봉사에 초점을 두며 종업원, 고객 및 커뮤니티를 우선으로 여기고 그들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헌신하는 리더십’으로 정의되는 서번트 리더십이 과거 20여 년의 침묵을 깨고 경영학자들과 기업들 사이에서 최근 들어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얼마 전 작고한 세계적 경영학자인 피터 드러커는 “지식시대에는 기업 내 상사와 부하 직원의 구분이 없어지며, 지시와 감독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에 “리더가 부하 직원들보다 우월한 위치에서 이들을 이끌어야 한다는 기존의 전형적인 리더십 패러다임에서 부하 직원들을 위해 헌신하며 리더십 능력을 길러주기 위해 노력하는 서번트 리더십 위주의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리더십에 대한 오해들
서번트 리더십은 리더들에게 과거 리더의 자질과는 전혀 다른 특성들을 요구하고 있다. 그 첫 번째 특성은 부하 직원에 대한 존중과 수용적인 태도가 전제된 ‘경청(Listening)’이다. 리더가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로 경청을 해야 부하 직원들이 바라는 욕구를 명확히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차원 높은 이해심을 뜻하는 ‘공감(Empathy)’으로, 리더는 부하 직원의 감정을 이해하고 이를 통해 부하 직원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가 이해하고 리드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부하 직원들을 이끌어 가면서 보살펴 주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를 살피는 ‘치유(Healing)’이며, 네 번째는 부하 직원들을 위해 자원을 관리하고 봉사하려는 ‘책임감(Stewardship)’이 요구된다. 다섯 번째로는 ‘직원 성장을 위한 노력(Commitment of the growth of people)’이 꼽힌다. 부하 직원들의 개인적 성장은 물론 정신적 성숙 및 전문분야에서의 발전을 위한 기회와 자원 제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조직 구성원들이 서로 존중하며, 봉사하는 진정한 의미의 공동체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공동체 형성(Building Community)’에 대한 마음가짐이 요구된다.
안타깝게도 국내 기업들의 서번트 리더십에 대한 이해는 다소 미흡한 듯 보여진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모름지기 리더십은 권위에 기반해 이래 저래야 한다는 고정되거나 잘못된 생각, 혹은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첫 번째 오해는, 리더는 다방면에 뛰어나야 한다는 선입견이다. 리더들 자신도 이러한 선입견에 대해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을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 또한 이러한 오해를 기반으로 리더들을 비판하는데 익숙해 있다. “우리 매니저는 현 상황 하에서의 관리만 잘 하지 미래에 대한 전력적인 통찰력이 부족해 미래 변화에 적절히 대비하지 못한다”, “우리 사장은 밀어 붙이기만 할 줄 알았지 직원들의 진정한 필요에는 둔감하다” 등과 같이 A는 잘 하는데 B는 부족하다 식의 비판 일색이다.
하지만 모든 상황에 부합한 만능의 리더는 없다. 옛날 중국을 통일한 유방(劉邦)이 그 좋은 예일 것이다. 한고조 유방은 전략에 있어서는 장량(張良), 군사에 있어서는 한신(韓信), 그리고 내정과 보급에 있어서는 소하(蕭何)에 미치지 못했음에도 이들을 거느리는 최고의 자리에 올라 천하를 호령한 바 있다. 유방은 다재다능하지는 않았지만 최고의 참모들을 적소에 배치하여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즉, 환경적 상황이나 사업의 성숙 단계, 직무 특성 등 리더에게 요구되는 역할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최적의 리더와 리더십이 있을 뿐 만능의 리더는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이와 관련, 피터 드러커는 “모든 환경에 들어 맞는 리더의 역량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하고 있다.

격려·지원 필요
리더에 대한 두 번째 보편적인 오해는 일반적으로 리더는 만들어지기 보다는 그러한 자질을 갖고 태어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한 가지 재미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내로라하는 세계 글로벌 기업의 세미나 현장에 참석해 현업 부서의 부장부터 실장, 이사, 상무, 사장의 연설을 한 자리에서 경청하는 일이 있었는데, 직급에 따라 좌중을 휘어잡는 연설자들의 역량이 어찌나 큰 차이가 있던지 사뭇 놀랐다. 연설자들이 타고난 자질만큼 직급을 부여 받았기 때문이었을까. 이는 분명 아닐 것이다. 부단한 학습과 노력을 통해 자기를 계발하고 향상시킨 결과였을 것이다.
실제로 리더십을 갖추는데 필요한 스킬도 다른 스킬과 마찬가지이다. ‘기업경영의 살아있는 신화’로 불리우는 잭 윌치 전 제너럴일렉트로닉(GE) 회장 또한 그의 선대 회장인 레그 존스에 의해 발굴돼 다양한 상황을 맞닥뜨리며 경험을 쌓으면서 만들어졌던 것처럼 말이다.
리더에 대한 가장 보편적인 마지막 오해는 리더는 명령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독선적인 리더들은 단기간에 걸쳐서는 탁월한 성과를 내기도 하지만 장기적인 조직 발전은 저해할 수 있음을 기업의 역사는 입증하고 있다.
짐 콜린스는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란 저서에서 좋은 기업에서 위대한 기업으로 도약한 회사들에 대한 연구 결과 이들 회사에는 공통적으로 지시하고 명령하는 리더가 아니라 강한 의지와 겸손함을 동시에 갖춘 리더가 있었다고 설명한 바 있다. 그는 단기적인 성과를 올리기는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조직의 자생력을 저하시키는 리더와 비교해 개인적으로 겸손하지만 초일류에의 강한 집념을 가지고 있는 농부형의 리더를 진정한 리더의 모습으로 제시하고 있다.

리더십 정립, 미래성장 밑걸음
오늘날의 경영 환경은 과거와는 사뭇 다르게 급변하고 있다. 그런 만큼 국내 리더의 역할도 과거와 같이 책상 앞에 앉아 과제를 지시하고 보고서를 검토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직접 모범을 보이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지원하는 모습으로 바꿔 나가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 기업들은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우리 옛 속담의 속뜻을 헤아리며 서번트 리더십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우리 환경에 맞게 이를 독자적으로 수용해 나가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지난 해 창립 10주년을 맞았던 한국EMC 또한 미래 10년의 도약과 리더십 정립을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매출과 시장점유율, 브랜드 인지도 등과 같은 구체적인 달성 목표는 물론, 직원 참여도와 만족도에 있어서 국내 최고 수준 달성을 목표로 삼고 있다. 한편으로는 젊은 인재들이 ‘존경 받는 기업(Company of Choice)’ 프로그램에 더욱 박차를 가할 예정이기도 하다. 직원들 개개인의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일할 맛 나는 일터 만들기를 통해 회사의 매출 실적도 달성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국EMC 경영진들은 작은 모습부터 서번트 리더십 실현에 나서고 있다. 매 분기마다 있는 전체 임직원 회의 때 임원들이 직원들을 대상으로 손수 커피와 다과를 서비스하면서 새로운 관계 정립에 나서고 있다. 기업 차원에서 보면 고객 만족 극대화를 위해 마련한 ‘TCE(Total Customer Experience)’프로그램에도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작은 변화들을 통해 이미 한국EMC는 과거 10년의 성장 모멘텀을 지속할 수 있는 엔진을 성공리에 가동했음을 감히 자신한다. 21세기 지식시대를 맞아 ‘새 술을 새 부대에’ 담고 있다는 확신 때문이다. 우리 기업들 또한 변화하는 경영 환경에 맞는 새로운 리더십 정립을 통해 지속적인 미래 성장을 위한 밑그림을 그려갈 수 있기를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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