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1,030달러로 시작된 애플컴퓨터는 애플 II 기계 매출에서 1억 달러 이상을 넘어서도록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하지만 애플의 창립자가 네트워킹 인물 목록에 올라있는 것을 보고 놀랄지도 모르겠다. 이 점을 생각해 보라. 애플은 컴퓨터에 네트워킹을 번들링한 최초의 업체였다. 나아가, 애플톡(AppleTalk)은 아직도 일반 컴퓨터 사용자들의 파일 및 프린트 공유를 위한 가장 쉬운 방안으로 존재하고 있다.
‘애플 신앙’에 지나치게 집착
오늘날 타 네트워킹 시스템 및 서비스와 애플의 통합은 제한돼 있다. 애플은 표준안 수용을 확고하게 따른 적이 없었는데, 이는 분명 네트워크 연결성에서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애플의 차세대 운영시스템인 맥 OS X(X는 10을 의미)의 경우 유닉스 환경에는 잘 통합되지만, 마이크로소프트 윈도, 노벨 네트웨어 및 기타 운영시스템에는 여전히 연결성이 거의 없는 편이다.
애플컴퓨터의 회장 겸 CEO로서 잡스는 위압적인 아버지와 같은 모습으로 회사와 그 직원들을 대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는 창의력을 장려하면서도 세심한 부분까지 철저하게 관리를 했다. 어떤 이들은 그를 몽상가로 생각하는 반면, 그의 완벽주의자적인 주도에 분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잡스는 애플이라는 신앙에 지나치게 집착했으며, 사업적 성공에는 충분히 신경을 쓰지 못했다.
잡스가 애플의 비즈니스 감각을 높이기 위해 영입했던 당시 펩시코의 존 스컬리 사장의 일례를 보자. 스컬리에 대한 그의 도전은 전설적이다. “당신은 남은 평생동안 설탕물이나 팔고 싶소?”
애플을 ‘다 큰 성인’ 회사처럼 다루기로 결심한 스컬리는 연구나 파티 같은 것들을 줄임으로써 무절제한 비용 지출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그와 잡스는 종종 사이가 좋지 못했으며, 잡스가 매킨토시의 발표를 도왔던 직후에 그는 회사를 떠나도록 강요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