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은 실컷 슬픔은 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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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은 실컷 슬픔은 몰래
  • 승인 2005.09.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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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동창생 수진, 주리, 희남은 그녀들이 한 때 사랑했었던 한 남자를 기다리며 이야길 늘어놓는다. 지금 사는 이야기, 옛날이야기, 서로가 살아온 이야기, 남편이야기, 되도록 좋은 방향으로만.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늘어놓는 이야기 속에서 가끔씩 불쑥불쑥 현재 그녀들이 겪고 있는 고통이 고개를 들이민다. 아무리 괜찮다고 거짓말을 하고 숨겨보려 해도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고통은 십년만의 만남에서 조차 숨겨지지 않는다. 십년이란 세월은 세 여자의 삶의 기로를 바꿔 놓았다. 삶의 어두운 이면을 엿본 그녀들은 서로의 삶이 안타까울 뿐이다. 슬픔에도, 고통에도 불구하고 삶은 이어진다. 그러므로 헛헛하게나마 크게 웃어 제치는 세 여자의 모습은 처량하기보다는 아름답다.

십년후 다시 만난 세친구의 이야기
‘십년후’는 이십대를 함께 보냈던 세 명의 여자 친구들이 십년후에 다시 만나는 이야기다. 십년이라는 짧다면 짧지만 길다면 긴 세월을 보낸 후 다시 만난 친구들. 그러나 연극 ‘십년후’의 세 친구는 대학시절 3명이 동시에 사랑했던 한 남자를 매개로 두고 그와 함께 십년후에 만날 것을 약속했다. 그리고 시종일관 그를 기다린다.
맨 처음 그를 사랑했던 수진은 그를 주리에게 빼앗기고 두 명의 다툼속에 먼발치서 그 남자를 지켜보던 희남은 우연치 않게 그의 아이를 임신했다가 중절을 받는다. 세 여인의 인생에 집요하게 관여했던 남자. 그 남자는 끝내 극속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지만 그로인해 세 여자의 삶은 바뀌었다.
사랑보다 안정을 택했던 수진은 믿었던 남편의 외도에 절망하고 수진으로부터 남자를 빼앗았던 주리는 빼앗는 것이 숙명인양 현재의 남편과의 삐걱거림속에서 다른 남자에게 도피하지만 결국 혼자 아이를 키우는 편을 택한다. 독신으로 열심히 사는 캐리어우먼(?)이지만 희남의 삶도 편안치 않다. 직장에서는 나이먹은 여자라 괄시하고 중절수술로 인해 다시는 아이를 갖지 못하게 된 그녀는 크게 웃으면 좋다는 의사의 말에 억지로 웃을 일 없는 그녀의 삶이지만 억지로 매일 크게 웃는다. 희남의 웃음은 공허하다. 억지로 웃고 있음을 알기에 함께 웃어줄 수 없는 아픈 메아리일뿐이다.

여자들의 수다, 눈물과 웃음속에 숨겨진 진실
연극 ‘십년후’에서 세 여배우의 밸런스는 나쁘지 않다. 적절한 무대소품도, 그녀들의 가식적인 현실을 드러낼 때 사용되는 푸른 조명도 그녀들의 속마음을 나타내는 오렌지빛 조명 등의 표현은 신선하다. 그러나 ‘십년후’는 약간의 아쉬움을 남긴다.
십년후에 만나는 세여자의 이야기가 과거가 공유됐던 한 남자에 의해서만 지배되는 설정이 약간 미약하달까. 또한 십년후 다시 만나 그동안의 공백이 있었기에 어색할 수 있지만 십년의 세월동안 그녀들이 겪은 것이 힘든 현실만은 아닐텐데, 좀 더 삶에 경험이 쌓이고 그간의 잘잘못도 덮어줄 수 있는 포용력도 세월이 길러 주었을 텐데 그녀들은 이십대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듯한 느낌이다. 여전히 삶에 어색하고 서로를 보듬어주지 못하며, 미숙한 모습을 유지한다. 마지막에 오지 않는 남자를 극복하고 나름대로 서로 화해를 도모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진정한 화해에 함께 미소짓기에는 설득력이 약하다.
그러나 실컷 수다를 떨고 나면 슬픔은 덜어지고 기쁨은 늘어나는 우리 여자들의 이야기가 연극 ‘십년후’에는 생생히 살아있다. 웃고, 떠드는 속에 다시 한번 삶의 용기를 얻어보자. 내일도 모레도, 그리고 다시 십년후에도 우리의 삶은 이어질 테니까….

■ 공연제목
<십년후>
■ 공연일시
2005년 9월 18일까지
평일 : 8시
주말, 공휴일 : 4시30분, 7시30분
■ 공연장소
대학로 발렌타인 극장 2관
■ 공연문의
JTCulture 전재완 실장
016-289-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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