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신세대의 상징! 삐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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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세대의 상징! 삐삐
  • 승인 2000.1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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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삐에서 IMT-2000까지
삐삐(정식명칭은 무선호출기, 페이저, 비퍼지만 여기서는 삐삐로 통일)가 신세대의 상징이었던 그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국내 무선통신의 시초는 군·안기부 등 특정계층이 이용했던 통신서비스로부터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80년대 초반에도 소위 먹통삐삐라 불리던 톤음방식의 호출기가 있었는데 이것은 발신자를 표시할 수 없고 단지 톤음으로 서로가 약속된 몇몇끼리 호출이 가능한 삐삐였다. 그러다 루메릭(번호서비스) 서비스가 시작되며 소수 일반계층에도 호출기 사용이 퍼지기 시작했지만 이때 역시 기기 가격이 턱없이 비쌌고 발신자 번호표시 이외에는 다른 부가서비스가 없었기 때문에 대중화되지 못했다.

본격적인 무선호출 경쟁이 시작된 것은 93년, 정부가 이동전화·무선호출부문의 독점사업자였던 한국이동통신(SK텔레콤) 외에 지역사업사 10개사를 허가해주면서부터다. 서울이동통신, 나래이동통신, 해피텔레콤 등이 무선호출 뛰어들었던 이 당시 SK텔레콤은 초반만 해도 여유가 있었다. 독점사업자로서 이미 200만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었고 새로 사업자가 들어온다해도 “해봐야 얼마나 하겠어?”라는 느긋한 생각이었지만, 015사업자들이 장려금을 무기로 저가공세를 펴옴에 따라 점점 추격을 당하기 시작했다. 한창 삐삐의 전성기였던 97년 초반 SK텔레콤은 15만원, 015는 7∼8만원에 구입할 수 있었으니 단연 소비자들은 015 삐삐쪽으로 몰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015사업자들은 음성메시지라는 부가서비스와 의무사용기간을 두고 호출기를 빌려쓸 수 있는 임대서비스를 시작해 무선호출의 대중화에 불을 당겼다. 특히 015사업자들은 신세대를 타깃으로 젊은 이미지를 마케팅했다. 인기가수인 HOT, 핑클 등을 이용, 이때부터 현재까지 통신사업에서 계속적인 수요창출이 가능한 신세대를 잡기 위한 광고전쟁이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이에 012는 015사업자에 대항하기 위해 대리점이라는 간접판매방식을 이용, 가입자를 늘려갔다.

삐삐는 ‘나를 표현하는 수단’
삐삐는 특히 세련된 디자인과 소형화로 신세대층을 파고 들었다. 삐삐 없으면 왕따가 될 정도로 삐삐는 우리의 생활상을 바꾸어놓았는데 당시로는 획기적인 음성사서함은 신세대 커플들의 사랑을 전하는 도구로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이로 인해 신세대와 구세대를 가르는 영역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기계사용에 익숙치못한 중·장년층은 “음성녹음은 1번, 호출은 2번을 눌러주세요”라는 안내원의 메시지에 놀라 전화를 끊거나 상대방의 응답이 없는 전화기에 말을 한다는 사실에 익숙치않아 생긴 헤프닝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한참 무선호출기의 전성기를 맞았던 97년도, 가입자는 1,500만을 돌파하고 고속삐삐, 광역삐삐 등의 새로운 사업도 등장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광역삐삐 전환가입자가 80% 이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타 지역에 가면 설정을 바꿔 수신을 받는 가입자는 10%밖에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좀더 세련된 디자인, 특별한 서비스를 원하는 소비자의 요구는 점차 증가해 삐삐인사말 서비스 700번의 등장 등으로 안내원의 음성이 아닌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하거나 특별한 음악을 녹음하는 등 신세대들은 삐삐를 자신을 표현하는 하나의 도구로 의미부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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