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생문(羅生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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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생문(羅生門)
  • 승인 2005.05.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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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생문(羅生門)-
하나의 사건을 둘러싼 네 가지 진실(?)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는 어느 날, 비를 피해 무너져 가는 나생문(성문) 앞에 세 사람이 모인다. 나무꾼과 스님은 그 날 벌어진 한 괴이한 살인사건의 증인으로 참석하고 돌아가던 길이였고, 지나가던 가발장수에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한다.
연극 나생문(羅生門)은 숲에서 발견된 한 무사의 시체를 두고 무사의 부인, 산적, 무사의 혼령 그리고 우연히 사건을 목격한 나무꾼의 각기 다른 증언을 바탕으로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욕망과 인생의 진정한 진실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 글·장윤정 기자·linda@datanet.co.kr|

거짓말, 우리 삶에 대한 보편적 진실(?)
연극 나생문은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이 영화화한 ‘라쇼몽’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그 자신에 대해 정직해질 수 없다. 자기 자신을 얘기할 때면 언제나 윤색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 이 작품은 그러한 인간, 즉 자신을 실제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거짓말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인간을 그리고 있다. ”
아키라 감독의 말처럼 나생문은 한 가지 사건을 놓고 서로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언급하는 등장인물들의 각기 다른 증언을 현재 시점과 과거 시점을 교차하며 진행시킨다. 그들은 무사의 죽음이라는 동일한 사건을 겪지만 살인의 주체도 각기 다르고 살인의 동기도 각자 다르다. 우연히 이를 목격했던 나무꾼의 증언으로 진실이 밝혀지는 듯 하지만 그 역시 자신에게 유리하게 숨기고 있던 진실이 있었다. 과연 진정한 진실은 무엇인가?
혼란스러워하는 등장인물들에게 나생문 옆에서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살인이라는 죽음의 사건으로 시작된 극은 마지막에 우연히 버려진 갓난아기의 발견으로 새로운 희망을 예견한다. 거짓으로 점철된 우리의 삶이지만 숨어있던 진실이 비개인 하늘에서 찾아드는 햇살처럼, 어린 아이라는 새 생명을 통해 희망의 출발점을 다시 찾게 하는 것이다.

무대·분장·조명·연기, 완벽한 조화 돋보여
한편 영화를 연극의 대본으로 삼은 만큼 이 연극은 영화적인 요소가 강하다. 연극의 막으로 나눠지는 장면 전환이 아니라 영화의 시퀀스처럼 각 장은 짧게 나누어진다. 따라서 암전(暗轉)도 많고 잦은 장면 전환으로 인해 관객이 싫증을 느낄 수도 있지만, 이 연극은 전혀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다. 이야기 자체가 흥미진진하기도 하지만 극 사이에 효과적으로 삽입된 북소리가 다음 장면에 대한 기대를 고조시키며 암전을 느끼지 못하도록 훌륭히 한 몫을 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북소리는 또한 우리 정서에 맞는 동양적인 색채를 내며 연극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다.
어떤 연극이든 연극이 시작되기 전에 무대를 바라보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 무대가 연극이 시작되면 어떻게 바뀔까, 이 공간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줄까. 나생문은 그런 두근거림의 최고조를 이루게 해준 작품이었다. 나생문의 황량한 분위기를 잘 표현한 무대 구성과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모양의 조명이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더해 막이 올라가기 전부터 극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줬다. 그리고 극의 시작과 함께 울려 퍼지며 극과 함께 하는 북소리, 이국적인 의상과 소도구들, 뛰어난 배우들의 연기력 등은 모처럼 제대로 된 연극을 보고 있다는 충족감을 만끽시켜 주기에 충분하다. 더불어, 나는 나 자신을 제대로 보고 있는가. 나 역시 나를 윤색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지 반문하게 만든다. 나생문의 엇갈린 진술속에서 과연 나는 나의 인생을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지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봄은 어떨지.

■ 공연제목
<나생문(羅生門)>
아쿠타가와 류노스께 작
권오일 편역
■ 공연일시
2005년 5월 29일 까지
평일 7 : 30
토·일·공휴일 4 : 30 , 7 : 30
■ 공연장소
대학로 청아소극장
■ 공연문의
JTCulture
전재완 실장 016-289-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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