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레인지 스토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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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레인지 스토리지
  • 권혁범 기자
  • 승인 2004.05.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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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국내 스토리지 시장은 전반적인 경기 침체로 말미암아 2/4분기까지는 그야말로 악화일로(惡化一路)였다. 상반기에 스토리지 구매에 적극적으로 나선 기업들은 거의 없었으며, 그 여파로 스토리지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할 것 없이 애초 계획에 훨씬 못 미치는 성적을 기록했다. 하지만 하반기 들어 슬슬 스토리지 경기는 풀리기 시작했다. 그 포문을 연 것은 다름 아닌 미드레인지 스토리지였다. 지난해부터 급격한 성장곡선을 그리던 미드레인지 스토리지는 성능과 기능성은 물론 소프트웨어 제품 지원까지 대폭 향상되면서, 그 동안 용량 확장에 소극적이던 제조, 공공, 유통, 병원, 인터넷 기업들의 구입을 크게 자극했다. 이와 같은 변화는 올해에도 이어져 바야흐로 미드레인지 스토리지 전성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전산관리자의 최대 임무이자 궁극적인 목표는 안정적인 시스템 운영이지만, 여기에는 항상 총소유비용(TCO) 절감이라는 조항이 따라다닌다. 요즘처럼 전산시스템의 비중이 높아져 도입하는 장비나 솔루션 수가 많아지면 그 조항의 구속력은 더욱 높아진다. 즉 경제적인 비용으로 전산시스템을 운영하는 것은 더 이상 선택사항이 아닌 셈이다.

이러한 고객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중대형 시스템 벤더들이 내놓은 제안은 바로 ‘통합(Consolidation)’이다. IBM, HP, 썬 등 주요 서버 벤더들은 단순히 기계 숫자를 줄이면 되는 물리적 통합부터 논리적, 합리적 통합에 이르기까지 시스템 통합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역설한다. 이는 스토리지 벤더들 역시 마찬가지다. 고성능 엔터프라이즈 스토리지를 이용해 기존 스토리지 시스템을 통합하면 전산 환경의 복잡성을 줄일 수 있고, 이는 곧 관리의 용이성으로, 다시 TCO 절감 효과로 이어지게 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과연 ‘줄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까? 스토리지를 예로 들어보자. 다수의 스토리지 시스템을 엔터프라이즈 스토리지로 교체하거나, SAN 환경을 이용해 중앙집중적 관리 체계를 세우는 것만이 현재 전산담당자들이 직면한 TCO 절감을 위한 해결책인가? 분명 맞는 말이지만,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 그 대답은 요 근래 스토리지 벤더들이 앞다퉈 주장하고 있는 데이터생명주기관리(DLM)로 대신할 수 있다.

DLM의 원래 개념처럼 탄생에서 성장기, 성숙기 및 쇠퇴기로 이어지는 생태계와 마찬가지로 데이터 관리에 있어서도 수명주기에 따른 차별화된 관리방안을 마련하면 되는 것이다. 고성능 엔터프라이즈 스토리지에 저장할 필요가 있는 데이터와 SAN 환경이 반드시 필요한 데이터가 있다면, 굳이 이런 환경이 필요하지 않은 데이터도 있게 마련이다. 즉 모든 데이터를 동일한 스토리지에, 그것도 동일한 환경을 적용하는 것은 오히려 TCO 절감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통합에 대한 열기가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전혀 상반된 개념의 미드레인지 스토리지 시장이 급부상하는 것은 이러한 배경에서 비롯됐다.

높은 품질·낮은 가격이 시장 활성화 ‘견인’

현재 전 세계 미드레인지 스토리지 시장은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스토리지 시장 자체가 미드레인지 스토리지 주도 하에 재편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물론 과장된 면이 없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전혀 근거 없는 소리도 아니다. 현재 스토리지 생산 업체들의 매출 가운데 미드레인지 스토리지 비중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지난해 미드레인지 스토리지가 차지하는 매출 비중이 10∼15% 정도에 그치던 EMC와 HDS가 올해에는 30%까지 높여 잡은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그러나 여기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 일반적으로 미드레인지 스토리지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JBOD와 싸우던 질 낮은 외장형 스토리지를 의미한다. DLM 전략에 따라 미드레인지 스토리지의 역할이 넓어졌다고 하지만, 전산시스템이 기업 비즈니스 전략의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과연 품질 보장이 되지 않는 기계에 데이터를 저장하는 기업이 얼마나 될 것인가?

이것은 스토리지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사람의 주장에 불과하다. 만약 미드레인지 스토리지가 여전히 내장형 스토리지에 덧붙여 사용하는 JBOD(Just Bunch Of Disk) 수준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현재 시중에 출시된 미드레인지 스토리지는 엔터프라이즈 스토리지의 기술력을 상당부분 차용하고 있다. 컨트롤러 구조를 이중화하고, 데이터의 정합성을 항상 확인하는가 하면, 장애 예상 디스크의 데이터를 자동으로 복제하는 등 데이터 보호 메커니즘으로만 본다면 거의 동일한 수준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엔터프라이즈와 미드레인지 스토리지를 구분하는 기준을 확장성, 기능성, 성능, 가용성으로 놓고 본다면, 그 차이는 갈수록 좁혀지고 있다. 확장성은 오히려 미드레인지 스토리지가 앞설 정도이며, 지원 소프트웨어가 늘면서 기능성도 크게 개선됐다. 성능에서도 미드레인지 스토리지는 CPU 클럭 스피드 개선으로 장족의 발전을 일궈냈다. 다만 가용성 측면에서는 여전히 엔터프라이즈 스토리지가 앞서 있는 게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엔터프라이즈 스토리지라 함은 99.999%의 가용성을 보장해야 하는데, 아직 미드레인지 스토리지는 여기에 미치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이와 같은 기술적 발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도입 비용은 미드레인지 스토리지 수요의 기폭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프로젝트마다 적용되는 단가가 다르다고는 하지만, 일부 프로젝트에서는 미드레인지 스토리지 가격이 테라당 1천만원 이하로 떨어졌을 정도다. 시장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산관리자 입장에서는 미드레인지 스토리지를 굳이 피할 이유가 없다. 아니 오히려 아주 미션 크리티컬한 시스템 구축이 아니라면 엔터프라이즈 스토리지를 구매할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하는 형편이다.

선두권 부재 속 치열한 권좌 다툼 ‘한창’

미드레인지 스토리지 시장은 엔터프라이즈 스토리지 시장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는 중이다. 엔터프라이즈 스토리지 시장이 기술력과 노하우를 앞세운 EMC와 HDS간 경쟁 구도라면, 미드레인지 스토리지 시장은 상대적으로 진입 장벽이 낮아 감히 누구도 선두 업체라고 주장할 수 없는 상황이다.

고객 성향도 기술적인 안정성과 가격을 적절히 고려하는 고객이 있는가 하면, 무조건 낮은 가격을 선호하는 고객이 있고, 특정 애플리케이션 도입으로 새로운 스토리지가 필요한 대기업 내 특정 부서가 있는가 하면, 서버부터 스토리지까지 번들링으로 구매하는 고객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본격적인 성장기에 접어든 미드레인지 스토리지가 그 동안 엔터프라이즈 스토리지를 선호하던 대기업부터 내장형 스토리지만을 사용하던 중소기업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확산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때문이다.

국내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미드레인지 스토리지 시장의 몸집이 커지면서 엔터프라이즈 스토리지는 물론, 엔트리 레벨 스토리지 시장까지 공략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한 까닭에 아직까지는 시장 선도 업체를 꼽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여전히 스포트라이트는 엔터프라이즈 스토리지 시장의 강자인 한국EMC(대표 김경진)와 HDS코리아(대표 나이젤 파슨스)에 집중돼 있다.

이들이 미드레인지 스토리지 시장에서조차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엔터프라이즈 스토리지 시장의 강자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미드레인지 스토리지 수요의 한 축인 SMB 시장에서는 EMC나 HDS가 아닌 IBM이나 HP라는 브랜드가 더 유명하다.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엔터프라이즈 스토리지 시장에서 갈고 닦은 노하우, 즉 소프트웨어와 서비스 지원 능력에서 높은 점수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EMC, 새로운 채널 정책·가격 인하 앞세워 ‘맹공’

지난해 새로운 채널 정책을 발표하는 등 미드레인지 스토리지에 강한 애착을 보이고 있는 한국EMC의 전략은 ‘가치 영업(Value Sales)’이다. 특정 솔루션, 산업, 지역에 강한 채널들을 앞세워 최적의 솔루션을 제시한다는 것이 골자다. 따라서 한국EMC는 지금까지와의 영업 정책과는 달리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하드웨어 박스와 번들링하는 패키지 상품도 고려하고 있다. 이와 함께 국내 환경에 적합하도록 로컬라이제이션을 별도로 추진하는 중이며, 확실한 시장 장악을 위해 가격 경쟁력을 분명히 하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지금까지의 실적만으로 두고 본다면 이와 같은 전략은 가히 성공적이다. 지난해 공장에서 만드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정도라고 엄살을 부리던 한국EMC의 미드레인지 스토리지 매출이 올해에도 고속 성장을 이어가고 있는 것. 지난 1/4분기에만 경희대, 원광대, 방통대, 천안외국어대 등 10여개 대학교에 총 80TB 규모의 ‘클라릭스 CX 시리즈’를 판매한 데 이어, 시·군·구, 병원 등으로 활동 영역도 크게 늘어났다.

이에 따라 한국EMC는 올해 클라릭스, NAS, CAS를 아우르는 미드 티어 스토리지 매출 비중을 전체 스토리지 매출액의 30%로 상향조정했다. 특히 지난 2월에 출시한 신제품 ‘EMC 클라릭스 CX700, CX500, CX300’이 본격적인 궤도에 올라서는 2/4분기부터는 매출 성장에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경진 한국EMC 사장은 “SMB 스토리지 시장이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SMB 스토리지 시장은 내장형 디스크나 서버와 번들로 제공되는 JBOD 시장으로 인식돼 왔다. 하지만 대학교 시장에서 입증된 것처럼 SMB 시장도 초기 도입 비용보다는 안정성과 성능, 관리 효율성, TCO가 중요한 스토리지 선택 사항으로 자리잡았다. 한국EMC는 대학교 시장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엔터프라이즈 시장은 물론 SMB 시장 공략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HDS코리아, 차별화된 채널 프로그램으로 ‘승부수’

HDS코리아 역시 서비스 지원 강화가 미드레인지 스토리지 시장 공략의 핵심이라는 점에서는 한국EMC와 유사하지만, 구체적인 진행 방법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다. HDS는 핵심 디스티인 효성인포메이션시스템(대표 류필구), LG히다찌(대표 이기동) 양사의 리셀러 확보 및 리크루트에 직접 관여하는 대신, 양사의 인적 자원을 직접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SPA(Solution Partner Aggregate) 정책을 추진할 예정이다.

HDS코리아가 전략적으로 추진하는 SPA 정책은 서비스(컨설팅 포함)라는 캐시 카우(Cash Cow)마저 디스티, 나아가 리셀러에게까지 이양하는 것이어서, 조금은 파격적인 정책으로 간주된다. HDS코리아는 이 정책이 채널들의 수익에 커다란 힘이 될 것이라는 판단 하에 앞으로 인력 교육에 전념할 방침이다.

이에 앞서 효성인포메이션은 미드레인지 스토리지 시장 공략을 가속화하기 위해 올 초 총판 체제 중심의 간접 영업 체계로 완전히 전환했다. 따라서 현재 효성인포메이션의 미드레인지 스토리지 사업은 주로 채널 지원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채널 지원을 위한 사내 전담 조직을 마련해 채널사의 제품 설치 및 기술 교육에 주력하는 한편, 세미나 및 로드쇼 등을 통해 지역별, 산업별 특성에 맞는 공동 마케팅을 전개하는 중이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효성인포메이션의 미드레인지 스토리지 사업은 올해 들어 더욱 맹위를 떨치고 있다. 지난해 공공시장에서의 선전으로 미드레인지 스토리지의 매출이 약 450억원(640TB, 전체 스토리지 매출의 25%)에 달했던 효성인포메이션은 올해 1/4분기에는 SK텔레콤, KTH, DMI(데이콤멀티미디어), 교보생명, 제일모직, 부산외국어대 등에 새롭게 ‘썬더9500V’를 공급하면서 고객층이 한층 두터워졌다. 효성인포메이션은 미드레인지 스토리지의 비중이 올해에는 30%까지 확대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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