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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네트워크/통신 장비 현황
2004년 03월 10일 00:00:00 강석오 기자
IT 강국 코리아,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보면 속 빈 강정이다. 외형적으로는 IT 강국의 면모를 갖췄지만 아직 국내 IT산업의 기반 경쟁력은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무늬만 IT 강국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외산의 독무대가 되다시피 한 지 이미 오래인 네트워크/통신 장비 시장의 사정은 더욱 그렇다. 우리나라의 초고속 인터넷망 보급률은 70% 이상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인터넷망을 구성하는 장비는 대부분 외산이 점령하고 있다. 하이엔드 장비로 올라가면 갈수록 국산을 찾아보기조차 힘든 게 현실이고, 가입자용 단말 정도만이 국산장비들이 차지하고 있는 실정으로 이것도 오히려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 정도다.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통신교환기를 개발하고, CDMA 신화를 일궈낸 우리의 저력은 이제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든 것일까. 네트워크/통신 시장의 침체 장기화와 경쟁 심화로 국산 기술이나 장비 개발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지금, 국내 시장이 외산장비의 테스트 베드로 전락하고 있는 현실을 지켜보고 있어야만 하는지 중간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 나라는 전세계가 주목하는 IT 강국이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이러한 찬사가 무색할 정도로 허점 투성이다.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정보통신 인프라에 걸맞는 경쟁력은 온데간데없고, 국내 시장은 외산 일변도의 수입품 전시장이 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좁은 시장에서 국내 업체간 치고 받는 출혈경쟁은 비일비재, 급변하는 세계적인 변화의 흐름에 동참하지 못하고 여전히 우물안 개구리로 남아 있는 것이다.

이렇듯 겉 다르고 속 다른 절름발이 IT 강국, 특히 국내 네트워크/통신 장비 업계의 사정은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외산과의 경쟁에서 이리 저리 치이고, 소비자들로부터 외면 받는 등 생사의 기로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이처럼 빈곤의 악순환이 계속되며 국산화를 위해 연구개발에 나섰던 많은 벤처들이 속속 무너지고 있는 가운데 국산장비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내실을 다지는 일이 무엇보다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미래 투자 소홀, 경쟁력 약화 부추겨

국내 네트워크/통신 장비 시장은 초고속인터넷 시장이 급팽창하면서 본격적인 성장가도를 달렸다. 하지만 초고속인터넷 1천만 가입자를 만들어 내면서도 세계적으로 내세울 만한 변변한 기술이나 브랜드가 없는 것이 국산장비산업의 현실이다. 시장 전망을 제대로 못하고 현실에 안주한 나머지 미래에 대한 투자를 소홀히 한 것이 지금이 경쟁력 약화를 초래한 것이다.

이렇듯 경쟁력이 취약한 국산장비 업계는 네트워크/통신 시장의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허약한 국내 업계의 실상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국내 시장에서의 입지도 갈수록 좁아지고 있는 한편 생존을 위한 돌파구 또한 단기처방에 그치고 있어 관련 업계의 위기감은 쉽게 걷히지 않을 전망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수요 급감으로 인한 매출 감소로 국내 장비 업계가 잠시 주춤하고 있다는 단기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외산장비와의 경쟁에서 밀리며 국산장비 업계가 몰락하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만큼 국산 벤더들이 처한 상황이 풍전등화의 급박한 것이다.

각 벤더별로 돌파구 마련을 위해 골머리를 앓고는 있지만 애국심에만 호소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보면 이제는 업계의 자체적인 힘만으로는 난국을 타개하기란 불가능하다시피 한 상황이 됐다. 그나마 가입자용 중소형 액세스 장비 분야에서는 가격 경쟁력에 앞선 토종 벤더들이 선방하고는 있지만 저가의 대만산이나 중국산이 밀려오고 있어 이 시장 또한 언제 상황이 역전될지 모르는 형편이다.

따라서 산·학·연의 긴밀한 연대 활성화를 통한 신기술 개발로 국내외 활로 개척에 나서는 것을 비롯 정부의 원천 기술 개발 및 지원, 그리고 이를 상용화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책 등 현실적이고 설득력 있는 대책과 지원이 절실하다는 것이 관련 업계의 공론이다.


‘산·학·연·정’ 연대로 기초체력 다진다

이처럼 고부가가치 코어나 에지 장비는 외산장비들의 점령하고 국내 벤더들은 중소형 액세스 장비나 가입자용 단말이나 개발하고 아니면 외산장비 판매 업체로 전락하는 등 외산장비의 국내 시장 지배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하지만 기술력이나 자본력 등이 부족한 국산장비 벤더들의 입장에서 보면 어쩌면 당연할 결과일 수도 있다. 오히려 국내 시장을 이나마 지키고 있다는 것을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자랑스런 세계 1등이 있다. 반도체, CDMA 단말기, LNG선(船) 등이 월드 베스트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네트워크/통신 장비라고 월드 베스트가 못된다는 법은 없다. 다행히도 최근 차세대 인터넷망을 우리 기술로, 우리 힘으로 만들어 가기 위한 정부주도의 국책과제 수행과 관련 업계의 노력이 이어지고 있어 차세대 시장은 국산장비의 입김이 커질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외산장비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장벽이 첩첩산중이다. 국내 장비 업계의 기술개발 투자 규모나 기술인력의 양과 질적인 면 모두에서 외산 벤더들보다 열악한 수준이고 국산에 대한 고객들의 신뢰도나 선호도 역시 여전히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가입자망장비와 랜/왠 장비분야에서 국내 업체들의 기술 역량이 크게 성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원천 기술과 요소 기술을 다년간 축적해온 외산 벤더들이 국내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당연할 지도 모른다”며 “네트워크/통신 장비의 국산화와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험난한 가시밭 길이 예상되지만 벤더간 협력은 물론 산·학·연·정이 각각의 역할분담을 통한 공동 개발과 지원 체제를 강화함으로써 기술 격차를 줄여 나가려는 노력이 우선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과거에 비해 국산장비들의 발전이 비약적으로 이뤄졌다고는 하지만 네트워크/통신 장비는 기술적으로 높은 신뢰성이 필요해 코어나 에지급 장비를 개발하고도 소비자로부터 국산이라고 외면을 당하는 것이 현실이다. 정부나 기업에서 국산화를 열심히 부르짖으며 개발한 장비를 팔 곳이 없으면 아무 가치가 없는 법이다. 따라서 국산장비 개발 못지 않게 판로를 개척할 수 있는 마케팅이나 지원, 그리고 국산에 대한 편견 불식 등도 국산장비의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중요한 포인트다.


국산장비 입지 갈수록 약화, 대책 마련 시급

서비스 사업자나 엔터프라이즈 고객들의 백본 네트워크의 근간을 이루는 코어급 네트워크/통신 장비는 국산과 외산의 기술격차가 가장 크게 드러나고 있는 부분이다. 즉, 백본 스위치나 라우터, 대용량 광전송장비 등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하이테크 기술이 집약되는 기술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만큼 고부가가치 사업이다. 역량이 부족한 국내 벤더들이 단기간에 외산을 따라잡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 중장기적인 투자와 노력, 정부의 지속적인 지원이 요구되고 있다.

국내 시장을 들여다보면 스위치나 라우터로 대표되는 랜/왠 장비 분야는 시스코, 주니퍼, 익스트림, 파운드리, 리버스톤, 쓰리콤, 엔터라시스 등 다국적 벤더들이 소호부터 중대형 시장 모두를 장악하고 있다. 다산네트웍스, 코어세스, 로커스네트웍스, 텔슨정보통신 등 일부 국산 벤더들만이 가입자 액세스용 메트로 이더넷 스위치나 xDSL 집선용 스위치 시장에서 선전하고는 있지만 코어나 에지급 장비로 사업 영역을 넓히기는 역부족인 모습이 역력하다.

더구나 해외 신생 벤더들과 중저가 대만산 장비까지 국내 시장 진입에 가속도를 붙이고 있어 국내 장비산업의 기반 자체가 흔들리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침체된 국내 시장 상황에서 국산 벤더들의 판로 확보는 더욱 어려워질 전망으로 이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경쟁력 확보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차세대 백본 네트워크로 부상한 10기가비트 이더넷을 보자. 코어에서 에지, 그리고 밑단 스위치까지 거의 모두가 외산 일색으로 국산 벤더들이 들어갈 틈이 없다. 남의 잔치에 구경이나 하는 들러리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ETRI에서 지난해 상반기 정통부 선도기반기술개발사업인 QoS 기반의 10기가비트 이더넷 기술 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10기가비트 이더넷 스위치 라인카드 기술을 개발했지만 당초 계획과는 달리 시스템 상용화가 지체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연내 상용화가 된다면 고속 랜 망과 메트로 이더넷 망 등에 널리 활용될 수 있을 전망으로 고속 랜 장비 시장 진출을 위한 기술 경쟁력 확보가 가능, 국산 장비의 보급 확대를 위한 조속한 상용화가 촉구되고 있다.

한편 광전송장비 분야 역시 대용량이나 핵심 코어 장비는 노텔, 루슨트, 알카텔, 시에나 등이 국내 시장에서 주류를 형성, 국산장비가 넘기 어려운 높은 장벽을 만들어 가고 있다. 그나마 삼성전자나 LG전자 등 대기업도 손을 든 이 시장에 레텍, 아이티, 코위버 등 중소 전문 업체들이 MSPP, OXC 등 차세대 옵티컬 장비 개발에 나서 나름대로의 성과를 거두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외산과의 경쟁력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으로 정부 차원의 전략적인 지원과 제도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 업계의 주장이다.


키포인트는 기술 격차 해소 위한 R&D 강화

이처럼 외산장비들에게 고스란히 내주고 있는 안방을 하루라도 빨리 되찾아오는 길은 핵심 네트워크/통신 장비의 국산화로 외산과 비교해 신뢰할 수 있는 수준으로 성능이나 품질을 얼마나 빨리 끌어올리느냐 하는 문제가 키포인트다. 정부에서 정통부 주도로 원천기술이나 요소기술 확보를 위한 국책사업을 추진하고는 있지만 기술 발전 속도가 워낙 빠르고 외산의 영향력이 크다보니 상용화까지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외산과의 기술 격차를 좁히며 적절한 대응을 위해서는 역시 국내 업체간 상호 협력이 무엇보다 우선 이뤄져야 할 전망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벤처기업간의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는 긴밀한 기술, 마케팅 등의 연계를 비롯 산·학·연·정의 협력으로 차세대 시장 선점에 필요한 핵심 요소기술이나 시스템 설계기술 등을 빠른 시일 내에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할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서두르지 않으면 차세대 시장에서 역시 국산장비의 설자리는 없을 것으로 어쩌면 마지막 기회를 맞고 있는 셈일지도 모른다.

관련 업계 일각에서는 국산장비의 향후 포지션을 대만 업체들에서 배워야한다고 지적한다. 국내 업계에서는 저가형 대만산 장비라고 무시하는 분위기지만 세계적으로는 SMB 시장에서 대만 벤더들의 장비를 무시하지 못하고 브랜드 가치 또한 상당한 것이 사실이다. 즉, 부품 공동구매 등을 통해 원가를 절감하고 꾸준한 투자와 해외 시장 개척 등을 통해 브랜드 가치를 높여 중저가 장비라도 세계 시장에서 당당히 이름을 날리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국내 벤더들도 하이엔드 장비로 올라가지 못할 것이라면 SMB나 로우엔드 장비로 돌파구를 찾는 것도 위기 탈출의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외산과의 정면 대응이 어렵다면 그간 쌓아온 기술력을 결합해 다양한 특화 기능을 통합시켜 특화된 시장을 개척하거나 틈새 시장 공략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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