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교 교수의 수다한판 (34)] 甲과 乙, 결국 살아남는 건 乙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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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교 교수의 수다한판 (34)] 甲과 乙, 결국 살아남는 건 乙이더라
  • 데이터넷
  • 승인 2022.06.2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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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넷] 직장 생활의 시작부터 세일즈와 마케팅 부서에서 일한 필자의 한때 소원은 “당신 같은 사람에게는 내 제품 안 팔아”라고 면전에서 큰소리 한번 쳐보는 것이었다.

좋은 고객도 많지만 구매자라는 위치를 한껏 이용해 권세를 부리며 甲질을 하는 고객을 만났을 땐 뒤돌아 나오며 욕설을 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사람이 고객이라는 이유로 까칠하게 대할 때는 서러움이 더욱 크게 다가온 적도 있었다.

평소 조직 문화에 관심이 많은 필자는 포스코 임원의 비행기 라면 갑질, 우유회사 직원의 대리점에 대한 막말 갑질, 비행기 회항 사건으로 불거진 땅콩 갑질 등 수많은 갑질을 보는 심정이 씁쓸하기 짝이 없었다. 한편으로는 필자의 갑질로 상처받은 이들도 있었을 텐데, 불안감이 머리를 스쳐가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甲과 乙의 문화는 구매자와 판매자의 사이에서 구매자가 甲이고 판매자가 乙인 상황이지만 판매자가 힘을 갖게 되면 甲과 乙이 뒤바뀌기도 하며 乙의 뒤에서 일하는 하청 혹은 대리점이나 중소기업은 乙도 아닌 丙이라고 자조 섞인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 다반사다.

중소기업 대표가 GAP이라는 브랜드의 옷만 입는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甲에게 얼마나 시달렸는지 필자의 입장에서는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최근 제자가 고객사로의 이직을 결정했다고 알려왔다. 아마도 乙보다는 甲을 해보고 싶었나 보다. 불과 4년 여의 乙 생활에서 벌써 甲을 해보고 싶다니 그가 느낀 甲乙 문화가 무서워진다.

강자 군림, 가진자 우월주의, 완장을 찬 이들의 월권행위 등은 甲乙 문화가 만연된 우리 사회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필자는 주로 乙의 위치에서 일해 왔기에 느끼는 바가 더욱 크다.

포스코 라면 상무 건은 오랫동안 슈퍼 갑의 위치인 원청 대기업에서 생활하면서 하청회사 관계자를 함부로 대해온 잘못된 행태가 몸에 밴 결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승자 독식의 경쟁 사회에서 승리한 기업이 누리는 우월적 지위 상황에서는 甲과 乙의 관계에서 주객이 전도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경쟁력 있는 그래서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의 제품은 구매자인 甲이 제품 공급자인 乙에게 끌려 다닌다. 파트너 관계가 끊어질까 노심초사하면서 불공정한 마케팅 활동을 당하면서도 눈치를 보는 뒤집힌 甲乙 관계를 심심치 않게 보곤 한다.

제품 경쟁력이 자신의 경쟁력으로 착각하면서 乙이 甲을 핍박하는 상황이 만들어지며 판매가 아닌 배급 형태를 갖고 있기에 그들이 군림하는 문화가 발생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만날 때는 아쉬움을 곱씹게 된다. 필자도 그런 적이 있었는지 걱정도 된다.

프랜차이즈 기업의 횡포 역시 본사 지시를 따르지 않으려면 대리점을 그만두라며 몰아붙이면서 실적을 위해 대리점의 손해는 관심 없다는 무책임의 발현이며 대리점이 한가족임을 알지 못하는 단기 영업실적 우선 정책의 결과일 것이다. 이런 유형의 갑질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기업에서도 종종 일어나고 있어 많은 아쉬움이 있다.

인사하는 모습만 봐도 누가 甲인지 乙인지 바로 구별되는 세상, 필자도 甲만이 대접받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외치고 싶을 때가 많았다.

많은 공직자들이 대접받는 위치에 있어 자연스럽게 甲의 위치에서 세상을 乙로 보니 공직자들에게서 혁신과 규제타파 등의 소신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국민을 개, 돼지로 표현하던 어느 고위 공직자의 말도 역시 甲乙 문화의 유산일 것이다.

퇴직하면 뒤바뀌는 甲·乙 인생
乙은 甲이 될 수 있지만 甲은 절대 乙을 못한다. 밑바닥 생활, 남에게 굽실거리며 부탁하고 비굴함을 인내하며 얼굴과 마음을 단련한 乙과 항상 우월적인 위치에서 자신의 주장을 먼저 내세우고 살아온 甲의 처지는 훗날 많은 변화를 가져온다. 공직자를 비롯한 甲의 위치에 오래 있었던 사람들의 사회생활 적응이 어려운 이유가 바로 甲乙 문화 때문은 아닐까?

얼마전 공직자들의 인생2막 강의 시간에 본인이 하고 싶은 분야의 고수들과 인연을 만들고 좋은 인맥을 구축해 새로운 일에 도전하면 좋겠다고 권했는데 인연을 만드는 일을 마치 아부하는 모습으로 보일까 망설여진다고 고백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甲의 위치에 익숙하기 때문에 乙의 입장에서 생활하고 싶은 마음이 적은 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절실하지 않은 탓으로 보이기도 했다.

세상의 모든 甲들이여, 언제나 그 자리에 있지는 못할 것이 분명하니 乙의 위치를 헤아리고 아량을 베푸는 멋진 사회를 만들어 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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