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넷] 필자는 글로벌 기업에 근무하던 시절 외국인 보스로부터 책을 선물받은 적이 있다.
리차드 칼슨이 쓴 ‘Don't Sweat Small Stuff’라는 책으로, 제목은 사소한 일에 목숨 걸지 말라는 의미다. 내용이 쉽고 간결한 짧은 단문 형태로 구성돼 있어 읽기에 부담이 없는 책이었다.
이후 국내에서도 한글판으로 출간돼 인기를 끌었던 이 책은 필자가 다른 외국계 기업에 처음 합류했을 때 리더십팀 전원에게 선물하기도 했었다.
저자는 큰일이라고 생각하는 지금의 많은 일들이 세월을 지나고 또 자세히 알고 보면 대부분이 사소한 일이라고 주장한다. 여유를 가지고 세상을 대할 때 오히려 생산성이 올라갈 수 있으니 사소한 일에 목숨까지 걸 정도로 빡빡하게 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외국인 보스가 필자에게 이 책을 선물한 이유가 있었다. 어쩌면 필자의 치부일지도 모르는 그때를 돌아보고자 한다.
한때 필자의 별명은 싸움닭이었다. 국내 기업에서는 독점적인 지위를 누리던 경쟁사에 맞서 후발주자라 투지를 불태웠고, 글로벌 기업에서는 시장의 호황과 제품 경쟁력을 앞세워 겁없이 행동했기 때문일 것이다.
선발주자를 따라잡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그만큼 큰 보람이 있었다. 글로벌 기업에서는 경쟁자가 거의 없는 독점 제품의 마케팅 활동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내부 커뮤니케이션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다른 세그먼트 담당 임원이 필자와 같은 직급이지만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마치 상급자처럼 대하며 필자의 업무 영역까지 간섭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혼자만의 생각일 수도 있지만 그와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을 외국인 보스가 알게 된 것이다.
그 외국계 기업에는 1on1(일대일 면담) 문화가 있어 상사와 부하가 1주에 한 번씩 업무는 물론 개인의 고민까지 대화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보스는 필자에게 두 사람의 불화가 경영에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으니 친하게 지내라는 강요에 가까운 요구를 했다.
하지만 싸움닭이었던 필자는 몇 가지 이유로 마케팅 활동을 방해하는 임원과 대화하고 협력하라는 지시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말을 하기에 이르렀다. 돌이켜보면 해서는 안 되는 언행이었고, 매우 후회되는 일이었다.
둘이 만나 솔직하게 얘기하고 서로 도울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려는 노력이 필요했음에도 자존심을 내세워 당시 그 보스는 어처구니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보스 역시 물러서지 않고 필자를 다그치며 매주 둘이서 점심을 같이 하고 영수증을 올리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 이후 필자와 모 임원의 냉전 구도는 조금 수그러들었지만 만족하지 못한 보스가 읽어보라고 선물한 책이 바로 ‘Don’t Sweat Small Stuff’다.
저자는 오랜 기간 심리치료 상담자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개인과 기업을 상대로 일상의 스트레스와 인간관계의 갈등 등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설파해 왔다.
저자도 원래는 매시 매분 시계를 들여다보며 숨가쁜 경쟁 속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살아가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결혼 직전 죽은 절친한 그리고 유능했던 한 친구의 삶을 보면서 스스로의 인생방정식을 재검토하게 됐다. 그리고는 삶의 방식을 바꿔 인생의 속도를 늦췄으며, 길가에 핀 꽃 향기를 즐기는 여유를 가지면서도 업무에는 여전히 생산적인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는 것이다.
인생관을 새롭게 정립한 후 저자는 평범한 이웃들에게 이를 전파하려고 책을 썼고, 전 세계 25개국에서 500만 부 이상이 판매됐다. 필자는 이 책의 평범하면서도 간단한 문구가 새로운 인생관을 갖게 하는 호소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100개의 간단한 문장으로 설명되는 것 중 몇 가지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마세요.
* 불완숙함과 친숙해지세요.
* 생각의 눈덩이가 끝없이 커가는 것을 주의하세요.
* 다른 사람의 말을 자르지 마세요.
* 좋은 일을 하고 나서 그걸 아무에게 말하지 말아보세요.
* 다른 사람에게 공을 돌리세요.
* 당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사리에 맞다고 상상해보세요.
* 다른 사람을 바꾸려 들지 마세요.
* 인내심을 더 기르세요.
*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미세요.
* 지금부터 1년 후에도 이 일이 나에게 중요할까요.
* ‘인생은 공평하지 않다’는 진리를 받아들이세요.
필자는 여전히 사소한 일에도 흥분하고 열을 내는 우를 범하고 있다. 그래도 예전과 비교하면 조금은 부드러워지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이러한 변화가 성숙해져서가 아니라 노화에 따른 것은 아닌가 생각할 때는 우울해지기도 한다.
사소한 일에 목숨 걸지 말라. 이 세상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중요한 일은 거의 없다. 이게 이번 수다의 한 줄 평이다.
그런데 얼마 후 ‘이 세상에서 중요하지 않은 일은 없다’라는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적이 있다. 세상살이는 역시 어려운 것 같다. 운칠복삼에 기댈 수밖에 없는 것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