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개최된 세계 최대의 정보통신 전시회인 ‘세빗 2003’에 참가한 세계적인 기업들의 최고경영자(CEO)들은 작금의 IT산업 불황을 극복할 수 있는 해법으로 너나할 것 없이 ‘기술혁신’을 첫 손에 꼽았다. 쉼 없는 성장과 발전을 거듭해온 IT산업이지만 기존 기술에 의존한 솔루션이나 비즈니스 모델로는 더 이상의 발전을 기대하기란 무리고, 생존 역시 담보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디지털 컨버전스’, ‘홈 네트워킹’,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등 그야말로 ‘혁신’적인 것만이 불황을 헤쳐나갈 수 있는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이는 나만의 차별화된 기술과 솔루션으로 남들보다 앞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창출이 가능해야 무한경쟁 시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현실로 돌아와 국내 네트워크 업계를 살펴보자. 국내 네트워크 관련 산업은 1990년에 들어서면서부터 성장에 성장을 거듭, 너나할 것없이 ‘네트워크’라는 타이틀을 내걸며 황금알을 낳는 시장에 뛰어 들었다. 하지만 나만의 신기술과 솔루션 개발은 멀리한 채 당장에 돈이 되는 외산 팔기에만 급급, 공급과잉에 따른 출혈 경쟁만을 불러왔다. 결국 네트워크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지난 2001년 말부터는 시장 상황이 180도 뒤바뀌기 시작했다. 이러한 침체 국면이 장기화되면서 불황이라는 직격탄을 맞은 국내 IT기업들은 매출하락, 수익악화, 자금난 등으로 사업 기반 자체가 흔들리며 신음하고 있다. 이는 네트워크 업계뿐 아니라 여타 다른 IT 업종들 또한 별반 틀리지 않은 상황일 것이다.
이제는 세계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기술이나 제품을 개발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좁은 시장에서 제살깍기만을 거듭하는 ‘우물안 개구리’ 시대는 이미 지나간 것이다. 특히 이번 세빗에서는 이러한 국내 현실을 절감할 수 있었다. 국내 기업은 150여개가 참여한 반면 대만을 비롯한 중국계 기업은 700여개가 참여, 전시장을 장악하다시피 했다. 물론 많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지만 이들은 국내 기업들이 그나마 세계적이라고 하는 이동전화단말기, 디지털TV, MP3 플레이어, LCD 모니터 등으로 빠르게 발을 넓히며 국내 기업들의 라이벌로 어느새 부상해 있었다.
국내 기업들과 견줘 기능과 성능, 디자인은 대동소이했고, 오히려 가격경쟁력을 앞세워 국내 기업들을 세계 시장에서 압박하기에 충분해 보였다. 이 대목에서 세계적인 기업의 CEO들이 말하는 ‘기술혁신’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우리 기업들도 그간의 구태의연한 자세에서 벗어나 글로벌 시장을 향한 마인드 전환과 전략 및 전술로 세계 경영을 위한 큰 그림을 그려야 할 것이다. 이라크전쟁이 끝나도 세계 경기가 불투명할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지만 이럴수록 남보다 한 발 앞설 수 있는 ‘혁신’적인 것들을 찾고,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