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성·생태계 갖춘 이더넷은 미래 성장 밑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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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성·생태계 갖춘 이더넷은 미래 성장 밑바탕”
  • 강석오 기자
  • 승인 2020.11.23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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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더넷, 올해로 상용 표준 제정 40주년
넷이벤츠, 밥 멧칼프 이더넷 창시자와 젠슨 황 엔비디아 CEO 대담

이더넷은 연결의 세상 그 어디에나 존재하는 익숙한 기술이다. 로컬의 PC, 프린터 등 여러 장치들과 연결할 때 다른 기술을 고려하지 않는다. 통신 서비스 사업자가 광범위한 지역을 신뢰할 수 있는 방식으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캐리어 등급 이더넷 이외에는 실질적으로 더 나은 선택은 없다. 올해로 이더넷은 상용 표준이 제정된 지 40주년을 맞았다. 넷이벤츠(NetEvents)는 이더넷의 창시자인 밥 멧칼프(Bob Metcalfe)는 가속 컴퓨팅의 거목인 젠슨 황(Jensen Huang) 엔비디아 창립자 겸 CEO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황 CEO는 멧칼프에게 이더넷 초창기 로컬 영역에 대한 통신장치 표준이 전무했던 당시, 다양한 가능성 중 어떤 것을 선택할지, 그리고 사무실에서 일반적으로 여러 가지를 혼용해 사용했던 당시를 상기하는 질문을 던졌다.

멧칼프는 이더넷의 기원은 사실 1980년 보다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설명했다. 제록스(Xerox)의 팔로알토연구센터(PARC)에서 근무했던 1970년대 초 그는 업무를 보다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으로 확신했다. 그는 제록스 경영진에게 캠퍼스 전역에 단순 형태의 네트워크 구축을 요청했고, 그 결과 당시로는 놀라운 속도인 초당 3메가비트로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는 일관성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게 됐다.

제록스의 사내 네트워킹 표준으로 정착한 지 몇 년이 지난 뒤 이더넷은 팔로알토연구센터의 벽을 넘어 외부에서도 보편적인 표준으로 여정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맞았다. 멧칼프는 제록스를 떠나 본인의 발명을 상품화할 수 있는 때가 왔다는 결단을 내렸고, 1980년 9월 이를 실행에 옮겼다.

▲ 멧칼프는 “제록스에 DEC와 이더넷을 호환할 수 있는 제품 공동 개발 제안 서신을 작성했고, 새로운 칩 표준을 찾고 있는 인텔을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에서 마주했다”며 “그 이후 DEC, 인텔, 제록스가 이더넷 연결을 위한 협업에 본격적으로 나설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 멧칼프는 “제록스에 DEC와 이더넷을 호환할 수 있는 제품 공동 개발 제안 서신을 작성했고, 새로운 칩 표준을 찾고 있는 인텔을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에서 마주했다”며 “그 이후 DEC, 인텔, 제록스가 이더넷 연결을 위한 협업에 본격적으로 나설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더넷, IBM 토큰 링 기술과 경쟁으로 성장

멧칼프는 창업할 생각으로 1979년 1월 제록스를 떠났다. 2월에는 당시 IBM의 뒤를 잇는 전 세계 컴퓨터 분야 2위 기업이었던 DEC(Digital Equipment Corporation)의 고든 벨(Gordon Bell) R&D 부문 부사장과 업무 관련 논의를 했다. 고든은 DEC를 위한 이더넷 설계를 요청했지만 제록스에 대한 충성심이 높았던 멧칼프는 거절했고, 대신 공동 개발을 제안하게 됐다.

멧칼프는 “제록스에 DEC와 이더넷을 호환할 수 있는 제품 공동 개발 제안 서신을 작성했고, 새로운 칩 표준을 찾고 있는 인텔을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에서 마주했다”며 “그 이후 DEC, 인텔, 제록스가 이더넷 연결을 위한 협업에 본격적으로 나설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더넷이 곧바로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1970년대 말 기술 세계는 상당부분 폐쇄적인 상태였고, 특허를 중심으로 파벌이 극단적으로 나뉘어져 있는 경우가 많았다. 새로운 표준은 언제나 편견과 더 열등한 것이라 할지라도 이미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충성심을 극복해야만 했다.

토큰 버스(Token Bus)와 IBM의 인기있는 토큰 링(Token Ring) 등 라이벌 기술이 있다는 것은 이더넷이 초창기에 큰 어려움이 있었다는 의미기도 하다. 하지만 이더넷에는 초창기에 중요한 후원자들이 있었다. 특히 이더넷의 장점인 개방성과 마찬가지로 IBM 토큰 링 역시 개방형 표준을 표방했지만 실질적으로는 모든 것을 IBM으로만 구성되도록 한 구조적인 한계가 이었다.

멧칼프는 “802.3이 있었고, 이것이 이더넷이었다”며 “802.4는 토큰 버스였고, 802.5는 IBM 토큰 링이었다. 그 때부터 향후 20년을 위한 열띠고, 첨예한 경쟁을 펼쳤다”고 전했다.

“만들면 진가를 안다” 원칙 하에 지속 발전

이더넷의 강점, 그리고 오랜 기간 사용될 수 있었던 비결은 단순히 개방성이나 전문지식이 없이도 사용 가능하다는 특성이 아니라 새로운 세대의 연결성에 대한 니즈에 부합하도록 지속적으로 진화한 방식에 있었다. 이를 위해 이더넷은 진화 여정에서 수많은 중요한 사이클과 이정표들을 거쳤다.

1995년 100Mbps 이더넷 혹은 고속 이더넷이 탄생하면서 사실상 토큰 링의 종식을 알렸다. 이는 단순히 성능 향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네트워크의 두 장치가 운용에 있어 최적의 공유 모드를 구축할 수 있도록 허용했기 때문에 상호운용성까지 갖추게 된 것이다.

1999년에는 기가비트 이더넷 또는 1000베이스-T가 고속 이더넷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운용을 개시했다. 이는 진정한 엔터프라이즈급 연결의 표준으로 이더넷이 자리매김했음을 알리는 이정표였다.

2002년에는 10Gbps 속도가 가능해지면 고성능 작업에서 이더넷의 인기가 높아졌다. 2000년대 말 IEEE는 40기가 이더넷을 승인했고, 그 후 10Mbps 레인(lane)을 통합해 100기가 이더넷 속도가 가능해졌다.

2016년 IEEE는 하이퍼스케일 웹 기업 형태의 차세대 사용자 수요에 직면하면서 25기가 이더넷을 공개, 이로 인해 이더넷은 그 어느 때보다 비용 효율성이 향상됐다. 2017년 이더넷은 더 빠른 속도와 넓은 대역폭을 요구하는 클라우드 기반 수요에 대응해 200기가 이더넷과 400기가 이더넷으로 전환됐다. 현재 이더넷은 800Gbps, 1Tbps를 넘어 그 이상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러한 여정의 시작은 신념으로부터 비롯된 도전이었다. 멧칼프에 따르면 이더넷의 원칙 중 하나는 ‘만들면 사람들이 진가를 안다’이었다.

멧칼프는 “초당 2.94메가비트 속도의 이더넷을 처음 구축할 때 그 누구도 초당 2.94메가비트가 필요하다는 요구사항을 제시하지 않았고, 그저 반도체가 허용하는 가장 빠른 통신 속도를 구현했지만 이것이 이더넷의 원칙이 됐다”며 “이제는 초당 800기가비트의 이더넷이 구현되고 있지만 당장 이를 요구하는 사람은 없지만 진가를 알아보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 이어 황 회장은 “모든 미래 성장의 밑바탕이 되는 이더넷에 경의를 표하며, 이는 멧칼프의 엄청난 발명 위에 만들어졌다”며 “이더넷 덕분에 모든 엔지니어와 컴퓨터 과학자들은 1990년대 초 상상할 수 있었던 것보다 훨씬 더 훌륭한 업계에 몸담을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 황 CEO는 “모든 미래 성장의 밑바탕이 되는 이더넷에 경의를 표하며, 이는 멧칼프의 엄청난 발명 위에 만들어졌다”며 “이더넷 덕분에 모든 엔지니어와 컴퓨터 과학자들은 1990년대 초 상상할 수 있었던 것보다 훨씬 더 훌륭한 업계에 몸담을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풍성한 생태계로 미래 성장 밑바탕

황 CEO는 이더넷의 강점 중 하나는 기반이 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높은 수준이었지만 혁신을 가로막을 수 있을 만큼의 장벽은 아니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황 CEO는 “인터넷은 이더넷을 기반으로 구축됐다. 이 때문에 이더넷은 그 위에 모든 종류의 애플리케이션이 구축할 수 있는 플랫폼이 됐다”며 “이더넷의 탁월성은 충분히 구체화됐지만 동시에 최대한 개방된 플랫폼 전략에 있다. 그 미세한 균형이 이 같은 풍성한 생태계를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멧칼프는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이 77억 명이지만 인터넷에 연결된 사물은 이미 80억 개가 넘었다”며 “이는 엣지 컴퓨팅을 위한 AI 도입을 논하기 전 숫자로, 이더넷은 인터넷 팽창에 따른 미래 도전과제에 직면하고 있다”고 전했다.

황 CEO는 “인터넷은 앞으로 지금보다 수 천 배 더 커질 것”이라며 “인터넷을 거치는 트래픽의 양이 엄청난 수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황 CEO는 “모든 미래 성장의 밑바탕이 되는 이더넷에 경의를 표하며, 이는 멧칼프의 엄청난 발명 위에 만들어졌다”며 “이더넷 덕분에 모든 엔지니어와 컴퓨터 과학자들은 1990년대 초 상상할 수 있었던 것보다 훨씬 더 훌륭한 업계에 몸담을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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