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SW시장, 중견·중소기업에 충분한 기회 제공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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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SW시장, 중견·중소기업에 충분한 기회 제공해야
  • 윤현기 기자
  • 승인 2020.09.08 11: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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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 기회 부족에 제값마저 받지 못해 어려움 가중
제도적 개선 통해 충분히 활동할 수 있는 터전 필요

[데이터넷] 2013년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소속 IT서비스 기업(이하 대기업)들의 공공사업 참여를 제한한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 시행 이래로 중견·중소기업들의 매출 증대와 그로 인한 고용 창출이 발생하는 등 긍정적인 효과를 냈지만, 정작 수십 년간 바뀌지 않는 공공의 발주 문화가 참여 기업들의 성장을 저해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SPRi)가 올 상반기 발간한 ‘소프트웨어 산업 내 공공소프트웨어의 역할과 한계’ 보고서에 따르면 공공시장이 양적인 측면에서는 성장하고 있지만, 질적인 측면에서 사업 환경이 개선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대기업 참여제한이 시작된 2013년을 기점으로 공공시장이 안정적인 시장을 제공해왔지만, 정작 발주되는 사업은 개발 사업보다 사업 금액이 낮고 소규모 사업인 유지보수 사업의 비중이 점차 증가했다는 설명이다.

SPRi 보고서에 의하면 2008년부터 2012년까지는 개발 사업 금액 비중이 높았지만, 2013년부터 2019년까지는 유지보수 사업 금액의 비중이 커졌다. 극단적으로 2008년 유지보수 금액 비중은 공공사업의 33%였지만, 2019년 유지보수 금액 비중은 64%로 크게 높아졌다.

유지보수 사업은 성격상 기술 개발이나 혁신이 어렵고, 공공부문의 혁신 성과를 마중물로 하는 민간부문으로의 파급효과를 유발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평가다. 이는 사실상 2013년 이후 공공시장을 맡아왔던 중견·중소기업들이 개발 역량을 키우기에 역부족했다는 근거로 작용한다.

사업 기회 부족에 제값마저 받지 못해
현재 공공시장에서 중견·중소기업에 대한 평가는 야박한 편이다. 2013년 이후 시장 플레이어만 바뀌었을 뿐, 저가 입찰로 인한 수익성 악화를 비롯해 기존 문제들은 달라진 점이 없다는 의견들이 주를 이룬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책임을 중견·중소기업에게 돌리는 것은 잘못됐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정부가 소프트웨어 산업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보고 육성한다 하지만 정작 제값주기와 같은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개선되지 않고 있다”며, “관련 산업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산적해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은 채 바뀐 플레이어들만 비난하는 것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고 있는 것과 같다”고 아쉬워했다.

가뜩이나 발주되는 개발 사업도 적은 편인데, 신기술 도입을 이유로 대기업의 공공사업 참여제한 예외 요청도 늘어나는 점 역시 중견·중소기업들의 시름을 한층 더하게 하는 요인이다. 지난 8년여 간 어렵사리 재편된 중견·중소기업 중심의 공공사업 생태계가 한 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한 중견기업 관계자는 “공공사업의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과거 공공시장에서 대기업이 받았던 비난의 화살을 중견·중소기업들이 고스란히 받고 있는데, 이를 빌미로 대기업이 다시 진입해야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지금이라도 공공시장에서 지적되는 많은 문제점들을 해결해 중견·중소기업들이 역량을 펼쳐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견·중소 사업 역량 충분
비록 대기업 배제 이후 많은 우려가 있었지만, 그동안 공공시장에서 중견·중소기업들이 보여준 사업 역량에는 크게 문제될 여지가 없었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부족한 개발 사업 중에도 중견·중소기업들이 수주했던 교육부 차세대 지방교육행재정통합시스템 구축,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관리 통합정보시스템 구축 등을 비롯해 여러 시스템들의 유지보수 사업에서도 이렇다 할 논란이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중견·중소기업들의 성과는 대기업 참여제한 제도 시행 이후 중견·중소기업들이 대기업에서 이탈한 전문 인력들을 흡수하고, 이들의 노하우를 사업에 접목시켰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그렇기에 대기업과 중견·중소기업의 사업 역량 자체는 큰 차이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대신 중견·중소기업의 성장을 지원하려면 보유한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 제공돼야 한다는 것이 업계의 입장이다. 사업 수행에 필요한 충분한 예산과 사업 기간이 보장되면 대기업 못지않게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대기업 출신의 중소기업 관계자는 “지난 여러 사업에서 중견·중소기업이 보여준 성과는 대기업에 못지않다는 것이 입증됐다”며 “중견·중소기업에게 제대로 된 기회를 주지도 않은 채 단지 우려만으로 대기업들에게 다시 공공시장을 개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전했다.

저가 입찰 방지·충분한 사업 기간 보장 등 제도적 개선 필요
충분한 공사 기간 동안 좋은 자재를 사용해 지은 건물은 튼튼할뿐더러 오래 지속될 수 있지만, 좋지 않은 자재들로 단시간에 지은 건물은 하자도 많고 제 구실을 하기 어려워 부실시공이라는 오명을 남길 수밖에 없다. 소프트웨어 사업도 이와 마찬가지다. 시간에 쫓겨 졸속으로 개발이 이뤄지면 많은 오류가 발생하고, 심지어는 처음부터 다시 개발을 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정부도 이러한 문제를 인지하고 다양한 개선책들을 내놓고 있지만, 일선 현장에서 체감되는 온도차는 여전하다. 저가 입찰을 방지한다 해도 여전히 가격 점수로 사업의 당락 여부가 결정되고 있으며, 오락가락하는 발주 일정은 사업을 준비하는 기업들의 인력 운영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발주됐던 행정안전부의 차세대 지방세시스템 구축 사업은 심지어 대기업이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최저가 입찰이 이뤄져 승부가 결정됐다. 이는 현금 동원력 부족과 공공시장 외 추가 매출을 기대할 수 없는 중견·중소기업으로서는 수익성 악화로 인해 시도조차 해볼 수 없는 문제다.

많은 논란을 일으켰던 교육부의 ‘4세대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구축’ 사업 역시 반복된 대기업 참여제한 예외 신청으로 사업이 9개월 넘게 미뤄지면서 이미 연기된 시스템 개통 일정을 준수하기 어렵게 돼 버렸다. 연내 사업자 선정이 마무리되지 못하면 계획된 일정대로 사업이 수행될 수 있을지 미지수이며, 만약 기존 사업 계획마저 변경된다면 사실상 시스템 구축 일정도 재수정해야 하는 부담도 있을 수밖에 없다.

한 중견기업 관계자는 “2013년 이후 중견·중소기업이 수익성 악화를 비롯해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현재의 공공시장 성과를 만들어왔다”며 “과도기적 시기가 지나고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만큼 충분한 기회가 제공돼 이들이 활약할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되기를 희망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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