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IT 장비 “달라진 위상 지켜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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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IT 장비 “달라진 위상 지켜봐라”
  • 권혁범 기자
  • 승인 2002.08.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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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의 설비투자가 큰 폭으로 삭감되면서 중고 IT장비(used equipment)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예전 같으면 중고장비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통신사업자들조차 투자비용을 절반 이상 줄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중고장비 도입을 신중히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프로세서, NIC 등과 같은 부품이나 서버 위주로 형성되던 중고 IT장비 시장도 최근 라우터, 스위치와 같은 네트워크 장비로 확산되고 있다.

국내 IT 경기가 좀처럼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분명 가계 소비는 늘었지만, 기업 시장은 아직 기대만큼 그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월드컵이나 주 5일 근무제와 같은 긍정적인 동인(動因)조차도 이와 같은 기업의 IT 한파를 녹이기에는 역부족이다. 여전히 대부분의 기업들은 지금은 일시적인 동인에 좌우되기보다는 긴축재정으로 내실을 기해야 할 때라고 입을 모은다. IT 경기 회복을 간절히 바라는 IT 관련 업체로서는 외부 요인에 의한 경기 회복은 당분간 포기해야 할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외부 요인이 아닌 내부적인 자구책은 없을까? 이를 위해 많은 IT 업체들은 탄력적인 가격정책을 추진하거나 투자 효율 극대화를 위한 신제품을 발표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일부 기업은 인수 합병이라는 초강수(超强手)까지 던지며 원가절감으로 인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미 얼어붙은 IT 수요는 아직까지 아무런 해동(解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과연 어디서부터 매듭을 풀어야 하는가? 이에 대해 IT 업체들은 ‘수요 감소’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 신규 투자를 통해 효율적인 시스템 환경으로의 변화를 모색해야 할 수요층(공공, 통신사업자, 금융, 일반 기업 등)이 단기적 이익을 위해 인프라 투자를 축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만약 이와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IT 투자 축소→서비스 품질 하락→고객감소→매출 부진→IT 투자 축소’라는 악순환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반면 IT 수요층인 고객들의 견해는 다르다. 이들은 그 동안 충분한 IT 투자를 통해 현재의 시스템 자원 여력은 충분한 상태이며, 따라서 현재로서는 기존 자원을 재정비하는 것 이외에 무리하게 투자를 집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특히 기존 자원 재정비 과정에서 발생하는 투자의 경우에도, 적절한 가격이 제시되지 않는다면 투자 시기를 연기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수요자와 공급자가 팽팽하게 맞선다면 대부분은 수요자의 판정승으로 결론이 나게 마련이다. 결국 현재 IT 시장은 수요 진작이라는 명목 하에 유례없는 저가 공세가 펼쳐지고 있으며, 더불어 ‘50% 이상 저렴하다’는 중고 IT장비(used equipment) 시장까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예전 같으면 중고장비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기업들이 많았지만, 투자 비용을 절반 이상 줄일 수 있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사용 기업도 하나 둘 늘어나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프로세서, NIC 등과 같은 부품이나 서버 위주로 형성되던 중고 IT장비 시장도 최근 라우터, 스위치와 같은 네트워크 장비로 확산되고 있다.

“중고장비가 투자 효율 높다”

사실 국내야 중고 IT장비의 역사가 짧지만 해외, 특히 미국은 오래 전부터 이와 같은 시장이 형성돼 있었다. 미국 최대 중고 네트워크 장비 공급업체인 NHR은 이미 1986년부터 IBM의 중고 제품을 공급해왔을 정도니까 이 회사의 역사만 해도 무려 17년에 이른다. 그만큼 오랜 기간을 거치면서 미국 기업들 중고장비에 대한 거부감도 이제는 상당부분 완화된 상태다. AT&T나 MCI월드콤과 같은 대형 통신사업자는 미션 크리티컬한 업무에도 중고장비를 사용할 정도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현재 미국에서 중고 IT장비를 취급하는 업체는 상당히 많다. 대표적인 B2B 전문업체인 e베이도 중고장비 판매업체 가운데 하나이며, 이 밖에 중소규모의 리셀러나 딜러까지 포함하면 그 숫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에 이른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전 세계 중고 네트워크 장비(used networking Hardware alone)의 50%가 미국에서 소비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NHR의 자체 조사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중고 네트워크 장비 시장 규모는 대략 40억달러에 이르며, 이 가운데 미국 시장이 20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국내 중고 IT장비 시장은 이제 겨우 3년째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중고 IT장비를 전문적으로 매매 중개하는 인터넷 사이트가 2000년부터 대거 등장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전에도 용산 등지에서 음성적으로 가공된 제품이 유통되기는 했지만, 이는 해외 중고 IT장비 업체들이 말하는 재가공(refurbish)이 아니라 새 제품인 것처럼 위장하는 재포장(repackage) 개념이어서 국내 중고 IT장비의 ‘역사’를 논할 대상이 아니다. 결국 인터넷 중개 사이트의 등장과 함께 SI, NI업체들의 참여가 두드러졌던 2000년이야말로 국내 중고 IT장비 시장의 본격적인 출발점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 당시 사업을 개시했던 기업 가운데 상당수가 중고 IT장비 공급을 포기했다. 그 당시 역시 지금과 마찬가지로 경기 침체와 투자 축소 분위기가 만연했지만, 고객들의 니즈(needs)와 연결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업계 전문가들은 중고 IT장비의 낮은 품질과 짧은 워런티(warranty) 기간을 주요 실패원인으로 꼽고 있다. 중고 IT 장비 가격이 저렴하기는 하지만, 품질이나 서비스 수준이 낮아 고객으로부터 외면받았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방창배 이밸리닷컴 사장은 “국내 통신사업자들은 아직 중고에 대한 거부감이 많다. 물론 직접 써 본 다음에는 괜찮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사업자들은 여전히 중고장비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본다. 이들을 적극적인 소비층으로 유입하기 위해서는 새 제품에 버금가는 품질과 서비스를 보장해야만 한다. 통신 장비는 마모되는 제품이 아니다. 이는 결국 새 제품과 중고는 품질과 서비스의 차이로 구분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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